김 상 규
폴리텍 원주
경력개발센터장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것도, 인터넷 검색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너무도 처참하게 전해지는 세월호의 비극,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가족들의 슬픔을 넘어선 분노를 보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검찰은 21일, 세월호 선주, 선박회사의 관계자를 출금조치하고, 경영상태 등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발생하고 언론에 인지된 후부터 지금까지 언론은 국민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정확한 사고의 원인일 것이다. 대부분의 뉴스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선박개조의 문제, 선장의 책무위반과 항해사의 문제와 위험인지 후 조치상의 문제 등 말이다.

물론 사건의 주범이자 생존자인 선장은, 선원법 제9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선장의 직접지휘권 행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져야만 한다. 아무리 법(法)상의 책임을 단호하게 묻는다고 해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고통이 상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안타까운 생명들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들게 하는데 책임이 있는 그 누구도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직업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스스로가 갖게 될 직업(Vocation)의 의미를 ‘Calling, 신으로부터 받은 임무'에서 찾기를 힘주어 말하곤 한다. 물론 종교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그리고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하게 될 일,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단지 직업이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니까 말이다.

적어도 세월호에는 직업윤리가 없었다. 하나뿐인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주었던 단원고 교사가 지켜낸 것은 소중한 학생의 목숨 뿐 만은 아니었다. 교사이기에 나보다는 학생들이 먼저일 수 있었던 가치관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선장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했을 그것, 자기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sense of ethics) 말이다. 혹자는 그들의 DNA 속에는 직업윤리의 감각적 마비가 자리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하는 직업사전(2014)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12,000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이 중에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자격과 전문능력을 요하는 많은 직업들이 있다. 특히 전기나 기계를 다루는 분야의 경우, 특히 작은 실수하나가 직무를 수행하는 스스로의 목숨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가치(Value)는 연봉과 복리후생 등 경제적 가치보다 늘 뒷전이다.

최근 고용시장에서 기업은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능력(Creative power)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또한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브랜딩을 위해 이미지 광고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것은 단지 이윤창출만이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본질은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전략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그 무엇을 추구함으로써 생존하고자 한다면,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이타적 배려를 실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월호의 선주-선박회사는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을 통해 최근까지 돈을 벌고, 그러한 기업의 돈벌이 항해에 키(rudder)를 잡았던 선장과 항해사의 실종된 직업윤리가 비극을 만들었다.

마이클 센델(Michael Sandel) 교수가 말하는 도덕적 가치(Morality)와 정의(JUSTICE)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덕적 가치와 윤리의식의 작동을 멈춰버린 세월호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대참사를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답게’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가디언(Guardian)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원주의에 입각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직업의 의미를 말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를 가르쳐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적어도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이런 비극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피해자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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