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자살보도 가이드라인 준수 수준 ‘향상’
2004~2019년 한겨레·조선일보 보도량 월 3.8→ 1.7건 수준 감소
 방법·장소 정보 미 제공 사례도 늘어…“제목·사진 사용 등은 더 개선돼야”
한림대·독일·오스트리아 공동 연구팀 “최근 기사 수집 연구도 필요”

2천년대 들어 국내 일간지의 자살보도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와, 언론의 가이드라인 준수가 실제로 자살 예방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란히 발표됐다.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주영기(사진) 교수팀이 독일·오스트리아 해외 연구진과 공동으로 2004년부터 2019년 사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자살 보도 606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책임있는 자살보도를 위해 제시된 가이드라인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보도 패턴이 개선되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살보도 가이드라인은 15년간의 연구 대상 기간중 2004년, 2013년, 2018년 세 차례 발표됐는데 연구진은 이들 가이드라인의 발표가 실제로 언론 보도 개선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기 위해 세 차례 발표 직전의 6개월 구간과 마지막 발표 이후 6개월 구간 등 4개의 6개월 구간에 두 언론사가 보도한 관련 기사들을 수집했다.

그 결과, 자살 보도 자체를 자제하라는 제언에 걸맞게 관련 보도량이 특히 2018년 전반기에 89건, 2018~2019 6개월 구간에 101건으로, 각각 218, 232건이던 전 기간들(2004, 2013년)에 비해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3.6, 3.8건 수준이던 것이 1.5, 1.7건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또 두 언론사의 책임있는 자살보도 점수(RRS 점수)가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RRS 점수는 자살보도가 추가적인 자살을 부추기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 방법· 장소 원인 등 구체적 정보와 관련 사진을 싣지 않는 보도 행태와 지원 기관 연락처 제시, 위기 극복 사례 및 관련 통계 등 효능감 정보의 제공 여부 등을 기사별로 점수화한 것이다.

2004년, 2013년, 2018년 국내 세 차례 발표될 즈음의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자살 보도를 조사한 결과, RRS 평균 점수는 2004년 6.7점, 2013년 14점 만점에 6.8점 수준을 보이다, 2018년 7.8점 수준으로 향상돼 마지막 구간인 2018~2019년에도 7.9점 수준을 보였다. 가이드라인의 지침 대로, 자살 보도 자체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데 더해, ‘자살’ 단어의 미사용, 방법·장소·원인 등 구체적 정보를 기사에 담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의 제안을 따르려는 ‘작은 변화’가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제목과 기사 본문을 나누어 보았을 때, 기사 본문은 가이드라인이 거듭 발표되면서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제목 부분은 별 다른 개선의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장소를 보도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은 2004년 83.9%의 기사 제목에서 지켜졌고, 2013년(84.9%), 2018년 전반기 (87.2%)에 비슷한 수준을 보이다 4번째 구간인 2018년 후반기와 이듬해 초반에는 77.2%로 감소했다. 또,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는 준칙도 2004년 83.5% 정도의 자살 보도 기사에서 지켜지다 78.9%(2013년), 70.9%(2018년), 70.3%(2019년)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이처럼, 전반적인 개선 추세에도 불구하고, 뉴스 소비자들의 눈길이 더 자주 가는 제목 등 일부 측면에서는 개선 조짐이 더디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경향도 보임에 따라 지속적인 기사 질 평가와, 언론계의 자체적인 논의와 각성의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내용분석 연구는 죽음에 대한 심리, 사회, 법, 의학, 인류학 등 다학제적 연구를 다루는 국제학술지 Omega-Journal of Death and Dying에 게재될 예정이다. 한편, 308명이 참가한 실험 연구에서는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권고안을 따른 메시지와 그렇지 않은 메시지에 노출된 그룹간의 자살 관련 태도를 비교한 결과, 두 그룹 간에 차이를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자살 위기 상담 지원 기관 연락처와 이를 통한 위기 극복 통계 등 효능감 정보가 담긴 자살 관련 보도를 접한 실험 참가자들은 자살 충동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는 의지가 높았다.

즉, 가상의 상황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이야기 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남’‘자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봄’‘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조언함’‘좀 더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지 물어봄’이라는 네 가지 대응 행동 의지를 묻는 문항을 통해 실험 참가자의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에 대한 지원 의사를 7점 척도로 알아본 결과,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효능감 정보들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기사를 본 그룹의 지원 의사는 평균 4.70을 기록한 데 반해, 가장 많은 효능감 정보들이 포함된 기사를 접한 그룹은 5.11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에 대해, 주영기 교수는 “자살보도의 기사 질을 평가할 수 있는 RRS 평가모델이 실제 내용분석에 적용돼 국내 보도의 전반적인 개선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실험을 통해 가이드라인 준수 메시지가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험 데이터를 확보한 것도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주교수는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2019년 이후의 보도 실태는 어떤지 확신할 수 없고, 자살 통계도 빠른 개선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여전히 자살보도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며 “자살 예방을 위한 보다 집중적인 저널리즘 일선 현장의 노력과, 더 많은 후속 연구를 통해 기사의 질 평가를 지속하고 동시에 다양한 설명 변수들을 개발하려는 헬스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실험 연구는 헬스커뮤니케이션 분야 해외 학술지 Health Communication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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