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교수, 정직한사회만들기
[최 영 교수, 정직한사회만들기

1990년도 초 아시아의 세마리 용은 일본, 싱가폴, 홍콩으로 기록되었다. 용의 자리에 들기 힘겨운 한국은 세계시장에 내놀 브랜드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 그러나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의 강국에 위치하면서 K-Pop 한류열풍은 세계를 강타 한국의 위상이 치솟았다. 거기다가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고 밤거리가 안전한 나라로 자랑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 밤거리 안전한 나라 5개국 선정에서 한국은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갑작이 미국 주요 언론은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폭력사태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길거리 묻지마 폭력, 신생아 버리고 죽이기, 학폭과 교권붕괴 등은 심각성을 느끼기에 충분한 한국병으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우선 교권붕괴와 학폭을 생각해 보자. 학교란 진리를 배우는 곳이고, 선생은 먼저 된 분이어서 그림자도 못 밟게 했다. 그런데 수업 중에 학생들이 전화기를 돌리고, 라면을 먹고 선생의 주의를 받으면 인권침해라고 고발하며, 부모들은 자식감싸기 항의의 삿대질을 하는 현상은 괴물들로 변하는 병리현상이다. 원시시대는 질서가 아니고 무질서가 힘이었다. 지금 모두가 무질서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면 학교는 왜 보내고 가야 하는가? 가정도 질서에서 태어나는데 질서가 무너지면 폭력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교권붕괴의 깊은 요인을 진단해 보자. 한국사회에 일찍이 "내 세끼 옹호주의"와 "치맛바람"이 있었다. 이러한 세풍은 자식을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이기주의와 사회로부터 고립된 폐쇠인으로 키운 것이며, 도덕성이 없는 사회장애인으로 키운 것이다.

교권붕괴는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간에 잡초에 물을 주어 악초로 키운 것이다. 이 악초는 학생, 학부모, 선생 모두를 죽이고 사회를 공멸시킨다. 어부는 바다파도에 맡겨야 되고, 군인은 군대규율에 맡겨야 되며, 학생은 선생의 손에 맡겨야 한다. 선생과 싸우려면 학교 대신 조폭에게 보내라. 독일이 재건된 후, 철학가 휘테는 "보라 저 위대한 독일 선생님들을!"이라고 칭찬을 보냈다고 한다. 교권은 무너져도 안 되고 무너져서도 안 된다.

다음으로 묻지마 폭력을 생각해 보자. 왜 갑작이 묻지마 폭력이 기승을 부릴까? "남 죽는 것을 즐기고 싶다." "다른 사람도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다." "장난으로 그랬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가정교육, 인격, 학교, 사회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간 한국사회는 경쟁과 소유에 매진하면서 삶의 가치와 사회윤리 같은 공동체의식에 빈곤했던 결과이다. 한국에 절대빈곤이 1백만이 넘고, 빈곤의 차이가 높고, 청년이 삶에 만족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은 정신건강에 타격을 주며 사람에 따라 사고를 유발할 수가 있다. 사회는 분리된 것이 아니고 모두가 연결된 공동체이다. 질병은 선천, 유전, 성격, 환경으로부터 발생된다고 한다. 묻지마 폭력은 사회의 윤리와 공권력의 시스템이 부셔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끝으로 신생아죽이기는 하늘과 땅이 분노할 폭력이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고 자기 아이를 죽이는 것은 괴물이다. 콜 버거의 도덕발달론과 피아제의 심리발달론은 인간의 의식과 도덕이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이론들이다. 인간의 의식과 도덕이 유아기적인 상태라면 장애인이라고 판명할 수 있다. 신생아죽이기는 가정, 학교, 사회의 교육부제와 책임연관이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소유와 경쟁 그리고 일등교육은 강하나, 생명존중과 책임교육 향상에는 부제였다.    

폭력은 원시적인 해법이며, 원시사회로 전환이다. 한국사회가 지금 번지는 폭력을 잡지 못하면 그간에 쌓은 세계적인 국가위상은 붕괴될 수 있다. 그래서 정부, 언론, 학교, 가정, 종교가 통합적인 교육회복메뉴엘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1천만의 불교와 7백만의 기독교가 폭력제거를 위한 해법을 내놓기 바란다. 수천의 소나무 중 한두개가 병들면 심각성을 보듯이 폭력은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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