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교수, T-Leadership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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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예레미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거리를...돌아다니며 찾아보아라. 정직하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는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렘5:1). 한편 "아무리 귀를 씻고 돌아보아도 당연히 할 말을 하는 놈이 하나도 없다."라고 그의 분노를 읽게 된다. (8: 1).
구약성경에는 세 종류의 지도자가 소개되고 있다. 성전을 지키며 상투적인 예배만 드리는 제사장, 항상 문제가 없다고 현실을 페싱하는 거짓 예언자와 위기와 비판 그리고 해법을 제시하는 참예언자로 나눈다. 앞의 두 지도자들은 썩은 물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마시게 하지만, 참예언자는 깨끗하고 깊은 샘물을 마시게 한다. 그래서 어느 역사고 간에 참예언자가 없는 시대는 썩어 병들게 된다. 그런데 참예언자들은 발을 붙이기가 힘들었고 수난을 당했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는 너희가 예언자들을 다 죽였다고 탄식했다.
소돔과 고모라와 폼페이오 시대에도 그 도성의 몰락을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갔다고 했다. 롯의 아내는 버려야 할 도성을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이야기는 의미가 크다. 예수께서 성전과 예루살렘성의 몰락을 예고했지만 기성종교는 그를 정죄했고,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티토군대에 의해 초토화 되었다. 이렇게 예언자의 말을 무시했던 시대는 재앙을 보게 된다.
첫째, 오늘 한국의 위기는 사회 곳곳에 정직과 인간성이 균열되고 있는 것을 본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정직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속이고, 사기치고, 부풀리며, 폭력과 죽이는 편법이 밥먹는 수단이 되고 있다. 암치료제라고 맹물 1병에 3백 만원을 받은 봉이김선달과 AI사칭 다단계로 350억을 챙긴 일은 왜 반복되고 있는가? 그것은 잡혀가도 돈만 몇 억을 찔러주면 풀려나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이 불문율로 사기꾼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1억만 번다면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고, 데이트 폭력만 해도 날로 증가되고 엽기적인 것이 문제다. 경찰의 신뢰가 추락되고,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의 부폐불감증은 더욱 우리를 좌절케 한다. 하루의 뉴스가 사기뉴스로 포장되면 예레미야 5장이 생각난다. "정직하게 제대로 사는 놈..."        
둘째, 부정부패의 병리현상이 날로 증폭되는 것도 위기지만 더 큰 위기는 악에 항거하는 예언자의 분노가 침묵하고 있는 시대다. 삶을 늘 비판하고 검증하라는 소크라테스, 유럽의 기독교지도자들을 악마라고 외친 니체,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들 보다 하나님나라에 더 앞서가고 있다"고 선언한 예수는 한국사회에 왜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시대가 썩어가는 것도 문제였으나, 문제에 대해 침묵한 시대를 더 염려했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 항상 잘 대답하는 자는 "악의 침묵은 악의 편이다."고 외친 본훼퍼다. 거짓 예언자들은 악에 침묵하고 동조하지만 참예언자는 부패예방을 위해 목숨을 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재판관은 구원이 없다."고 선언했다. 당시 재판관들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이다. 오늘 어느 영역에서나 사람들이 악에 침묵한다면 거기엔 구원은 없다고 선언한다. 오늘 사회악과 지구붕괴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무슨 요인일까? 가정과 학교, 사회와 종교교육의 붕괴라고 본다. 바울이 유대교에 맞서 새로운 그의 기독교를 탄생시키기 위해 "공로가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슬로건은 인간의 책임의식을 죽이고 바보와 노예로 그리고 멍크리스챤이 되게 했다. 예수의 낙원이야기를 믿기만 하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가정과 학교는 양보와 정직 그리고 사회질서를 가르치고 종교는 사회악과 지구보호에 책임의식을 갖게 해야한다. 울지 못하는 장닭, 짓지 못하는 똥개 어디에 써먹겠는가?  
독일 신학자 마틴 니뮬러의 선언은 유명하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합원이 아니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음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일본의 죄악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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