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교수 T-Leadership School
최 영 교수 T-Leadership School

사람들은 새 아침이 되면 설래인다. 새벽을 헤치고 나오는 해돋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작가들은 창공을 비상하는 새들을 바라보며, 지휘자들은 베토벤의 황제나 리차드 스트라우스의 "짜라트르스는 말했다", 트럼펫이 태양처럼 치솟는 선율로 새 아침의 무대를 장식할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필자는 2023년 새 아침, 대한민국 국민에게 꿈을 말하고 싶다. 꿈이란 언어는 네 개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첫째는 씨앗이다. 삶의 본질이 되는 알맹이가 담긴 언어다. 농부가 씨앗 3개를 뿌린다는 것은, 자기 것 하나와 새와 땅 속의 벌레를 위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농부에게 네 개를 부탁하고 싶다. 그 마지막 씨앗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농부와 땅에는 미래가 있어야 한다.

꿈은 programming producer의 기획서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는 몰락과 성장이 교차되고 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몰락 현상은 종교이다. 생명이 없는 이념종교의 몰락의 자리에 탈종교와 무종교가 솟구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트로트문화가 펜데믹 속에서도 웅비하는 이유는 PD가 있기 때문이다. 꿈은 내일의 삶을 잉태시키는 기획서다. 오늘 같은 열매 없는 내일이 똑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꿈이란 계획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농부가 내일을 위한 씨앗을 잊어버린 것이다.    

둘째, 필자는 매일 꿈의 결실을 환상적으로 경험할 때가 많다. "꿈을 시도하는 곳에는 결실이 일어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체험이다. 인간의 숲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부딪치며 경험하는 삶은 생명의 활동이다. 설령 그곳에 상처와 손실이 있다고 쳐도 삶은 부정을 통해서도 익어간다. 그래서 꿈을 위한 시도가 없는 삶은 죽은 것이다. 말 없는 나무는 비바람을 맞으면서 성장한다.    

셋째, 꿈꾸기는 에너지를 창출해 낸다. 꿈꾸기는 온 몸을 회전하는 피와 같다. 꿈꾸면서 거울을 쳐다보면 얼굴이 붉게 채섹된다. 그것은 온 몸에 피가 돌기 때문이다. 꿈을 꾸면 웅변적인 언어활동이 일어난다. 꿈은 숨길 수 없이 화산처럼 터져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온 몸은 불바다가 되고, 세포는 천천히 늙고 건강해 진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필자는 "Dream Therapy" 란 이론을 내기도 했다. 꿈은 치료제요, 정신건강 증진제요, 에너지가 된다.

넷째, 꿈꾸기는 과정을 즐기는 과정의 여행, process journey 이다. 꿈꾼대로 항상 알맹이가 보이면 대박이다. 대박이 안 보여도 더 가치있는 삶은 꿈꾸는 과정이다. 우리가 여행을 할때 목적지에 도착하면 실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시작과 과정은 엄청 행복한 것이다. 결혼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의 사무실 벽에는 몇 개의 명언이 있다. "인간은 왔다가는 것이 아니고 살다 가야 한다." 멋지게 살려면 꿈꾸는 일이다. 모두의 벽에 꿈이란 그림을 그려보면 한다. 아울러 니체의 말이 동행하고 있다. "정박하지도 말라. 표류하지도 말라. 오직 항해하라." 처칠은 또 하나의 용기를 준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삶은 책임적인 행동활동이다. 행동하는 곳에 구원이 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못하는 예수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장난 피리와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빌라왕이 판치는 세상에 변혁의 혁명이 일어나게 새 아침에 꿈꾸기를 시작하자. 소유와 욕망의 경주를 내려놓고 상생의 가치를 향해 새 아침의 꿈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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