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교수, T-Leadership School
최영 교수, T-Leadership School

실존주의 신학자 Paul Tillich는 성서의 용어를 오늘의 언어로 전환하기로 유명하다. 그 예로 현대인의 감정을 위해 '죄'란 무거운 용어를 '분리'란 단어로 재해석한다. 그의 설교집 The Eternal Now에서 "앓는 사람을 고쳐 주고...마귀를 쫒아내라"에서 목회의 사명 중 치료와 악마를 추방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현대목회는 건강한 사람만 다루고, 병든자를 외면한 채 목회자 자신이 병든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틸히는 병을 영과 육의 양면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보며, 함께 연대할 때 치료된다고 본다. 특히 너의 앓이는 나의 앓이며, 사회적인 질병은 나와 깊이 연관된 것이고, 내 안에 악마가 있음을 주목하라고 한다. 이와 같은 질병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연관된 사회적 존재임을 웅변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보자. 한국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민낯은 부정부패다. 그러나 최근 심각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스토킹살인은 인간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며, 바로 옆집에서 생활고로 가족자살은 또하나의 문제로 고개를 쳐들고 있다. 프로포즈에 반대한 상대를, 함께 했던 애친을, 짝사랑에 거절을 , 가족간 짜증에, 난폭한 운전과 불법파킹에서 고성과 주먹질 그리고 살인으로 잇게 하는 오늘의 작태는 분명 우리들, 한국인의 질병이 아닐까?

한국은 유엔의 240개 국가들 중 경제, 기술, 문화 등에서 기록적인 모범국으로 자랑한다. 그러나 손등을 뒤집으면 심각한 피부암이 성장하고 있다. 상대방이 싫다면 제 3의 기회가 많은되도 왜 물러나지 못할까? 함께 살을 맞대던 가족과 친구끼리 왜 살인을 택해야만 되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벤츠를 타면서도 불법파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배꽁초를 치우는데 한해 약 40억이 들지만 하수구를 막히게 버리고, 에스카레이터에서 걷지 마라는 규칙을 무시하면서 비키라고 짜증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사회 이대로 좋은가? 2011년 3월 11자 Time잡지는 CNN Fareed Zakaria와 David Drehle 두 시사논평가들을 초청하여 미국의 장래를 논쟁하게 했다. 드렐은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1위 자리를 지킬 것이며, 자카리아는 위기를 예고 했다. 숲 속에 병들어 죽어가는 몇 그루 나무를 보고 간단한 일로 묵인해 버리는 반면, 다수의 나무들이 죽을 수 있는 미래가 올거라고 경고도 했다. 이처럼 지금 한국사회의 갈등과 분노는 내일의 한국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갈등과 분노에 찬 사회에서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 소유에 대한 욕망과 풍요를 향한 질주 때문에 사회적 앓이를 잊어버리고 안주할 것인가? 태평양 반대편에서 출발한 쓰나미는 내가 죽은 후에나 올 것 같으니 괜찮다고 할 것인가? 사회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나 자신만의 구원을 외치며 천당과 극락을 향해 가는 종교인이 될 것인가? 국민의 아픔을 잊은 채 상대편을 무조건 까부시는 쓰레기 같은 정치가들은 국가붕괴의 주범들이 아닐까?  

오늘 우리가 한국인이라면 현재와 미래사회를 부식하고 붕괴시킬 질병을 분명히 치료해야 한다. 첫째, 가정에서 식구들끼리 인간성을 가꾸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자. 배려와 양보하는 정신을 키워야 한다. 둘째, 학교는 1등 교육보다도 서로 생각하며 돌봄이가 되는 교육에 토론시간을 만들자. 셋째, 종교와 사회는 속도 보다도 인간존중과 질서를 지키는 기본훈련을 해야한다. 단군역사에서 한국인은 호랑이가 아니고 천천히 생각하는 곰으로 태어난 자화상을 가르치고 있다.  

신학자 Tillich의 메세지를 다시 생각하자. 사회의 병은 나의 병이며, 너의 앓이는 나의 병이며, 나의 병은 사회의 질병이며, 내 안에 숨은 악마가 있다. 건강한 사람만 바라보고 병든 사회를 잊은 채 나의 구원에 안주하는 것이 더 위험한 질병이라고...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며, 분리가 아니고 돌보는 곳에 치유가 있다고 한 메세지!!!     

   

저작권자 © 강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