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항 중
강릉소방서장

우리말에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흔히 쓰이는 관용구가 있다.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이라고 하여 무관심하게 방관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또 ‘굴뚝같다’라는 형용사도 있다. 이는 바라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몹시 간절함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다. 어느 것이나 언어적 표현기법으로만 본다면 정말 입가에 은근한 웃음기를 흘리며 무릎을 치게 하는, 우리말의 우수성과 묘미를 느끼게 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의 의미적 측면에서 보면 후자의 경우에는 우리네 민초들의 삶 속에서 느끼는 그리움과 간절함 등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비애감마저 느껴진다.

무관심과 방관이라는 것, 인간관계에서 이처럼 잔인한 것도 없다. 차라리 미워하거나 증오한다면 반항이라도 해 볼 터인데, 아무런 관심조차 두지 않고 그림자 취급을 한다면 어찌해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입장이 다를 때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황신혜 밴드는 자신들의 앨범 [우주는 한 그릇의 짬뽕이다 - Best Of Hwang Sin Hae Band 1997~2004]에 실린 노래 [강 건너 불구경]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 강 건너 불구경하네. 강 건너 불구경하네. (중략) 저 강 건너에 아닌 척, 돌아누운 강 건너에, 보채고 부추기고 닦달을 하고, 애걸복걸 난리법석 통곡을 해도, 아닌 척 모른 척 상관없는 척, 자는 척 죽은 척 흐르지 않는 척, 돌아누워 늙어 죽을 강 건너에.......」

이처럼 우리는 서로의 불행에 대해 무심해 하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한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 불구경이나 TV에 비치는 전쟁장면을 볼라치면, 겉으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내심 어느 한 구석에서는 흥분감 마저 감도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구경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사악함은 나만이 가지는 것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것도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강 건너’가 아닌 바로 내가 선 이 자리에 그런 일이 닥친다면 그 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쪽 ‘강 건너’에서 보면 내가 서 있는 이쪽이 바로 ‘강 건너’가 아닌가. 세상 모든 것이 어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며, ‘나’에게만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언제 어느 때 나에게 그와 같은 불행이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뭇 생명들을 달궜던 여름날의 강열한 태양도 어느덧 그 힘을 늦추고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자연의 변화 앞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는 언제나 위험을 내포한다. 추석을 앞둔 이즈음에는 태풍 등의 자연재해와 부주의로 인한 각종 안전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물론 자연의 위력 앞에 불가항력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안전에 대한 우리의 안일함과 부주의가 불행을 키운다. 여름날의 느슨함에 젖어 경각심을 잃은 탓이다. 준비하는 자에게는 불행이 길을 비켜선다고 한다. 우리는 혹시나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한 날들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방관서에서는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매년 화재예방홍보 및 각종 소방안전대책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이러한 소방관서의 노력만으로는 시민의 안전 확보에 한계가 있다. 시민 스스로 안전지킴이가 되어 생활 주변에 상존하는 위험요인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축대 붕괴나 침수, 산사태 위험지역은 없는지, 전기를 문어발식으로 사용하는 곳은 없는지, 가스를 사용하지 않을 때 밸브는 잠겨 있는지, 어린이들의 손이 닿는 곳에 성냥이나 라이터를 두고 있지는 않은지 등 생활 주변에서 일어 날 수도 있는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불행한 일이 닥친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세상의 일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니 잠시라도 방심하면 그 틈으로는 반드시 불행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불행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화재, 교통사고, 사업의 실패, 가족의 해체, 일탈......., 불행은 언제나 짝을 이루어 여행한다. 11월 불조심 달을 맞아 평소 내 주변을 세심히 살펴보고 ‘강 건너 불 보듯’이 아니라 ‘굴뚝같은 마음’으로 나와 내 가정의 안전을 위해 생활화된 안전점검을 하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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