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저체온증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 중 하나

【강원신문】황미정 기자 =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몸을 녹이려 가볍게 술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 움츠렸던 몸이 풀리는 것 같고 속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상하게도 술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혈액이 내부 기관에서 피부 표면으로 몰려들면서 피부가 뜨거워지는 등 온도가 일시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체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내과 전용준 원장은 “술을 마시게 되면 체내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일시적으로 체온이 올라가지만 결국 피부를 통해 다시 발산되기 때문에 체온은 떨어지게 된다”며 “오히려 몸 속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저체온증은 보통 체온이 35도 아래로 떨어진 경우를 말한다. 몸에서 생기는 열보다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열이 더 많아 발생하고 피부 체온보다는 몸의 중심체온이 떨어져 발생한다.

저체온증을 일으키는 음주
지난 12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18일까지 한랭질환자는 모두 1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7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저체온증은 116명(84.7%)으로 가장 많았으며 저체온증 환자 중에서도 절반은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음주는 저체온증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 중 하나다. 우리 몸은 언제나 일정한 체온인 36.5도를 유지하는데, 이는 주로 시상 하부와 체온 조절 중추신경계가 조절한다. 술을 마시면 이러한 중추신경계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서 저체온증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다.

저체온증은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초기 증상만으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지나치게 몸을 떨거나 피부가 차고 창백해지면 저체온증 초기 증상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몸의 중심체온이 35도 미만으로 떨어지는 심각한 저체온증에 빠지게 되면 술에 취한 듯한 행동이 나타난다. 알 수 없는 감정의 변화로 짜증을 내고 발음이 부정확해질 뿐 아니라 권태감, 피로 등을 호소하면서 자꾸 잠을 자려고 한다. 심지어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옷을 벗는다거나 몸을 반복적으로 흔드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전용준 원장은 “중심체온이 34도까지 떨어지게 되면 술에 취한 듯한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만약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저체온증 때문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중심체온이 33도까지 내려가면 근육 강직 현상이 나타나고 32도까지 내려가면 불안이나 초초함을 느끼고 어지럼증이나 현기증을 느낄 수 있다. 심할 경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식까지 희미해지면서 혼수상태나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실제 지난 2일 강원 강릉시 노암동에서는 70대 노인이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길에서 잠이 들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바 있다.

전용준 원장은 “술을 마시면 추위를 덜 느끼게 되고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판단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평소 지병이 있거나 추위에 취약한 노인의 경우 체온 조절 기능이 더욱 떨어지는 만큼 겨울철 음주는 조심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 알코올 의존, 저체온증에 쉽게 노출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서 저체온증에 노출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최근 다사랑중앙병원을 찾은 50대 환자의 경우에도 술을 마시고 저체온증으로 발견돼 응급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용준 원장은 “이 환자의 경우 다행히 일찍 발견해 치료가 가능했지만 방치됐을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에게 겨울 추위는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코올 의존은 습관적으로 음주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병이다. 알코올 의존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 대부분은 환자가 술에 취해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 만성화되어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무사히 귀가하면 다행이지만 추운 겨울철에는 심각한 상황까지 이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겨울철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의 조난이나 해양 사고 등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저체온증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저체온증에 노출되기 쉬운 음주자 관리 문제는 사실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가벼운 저체온증으로 그칠 수 있었던 경우조차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저체온증은 빨리 알아차려야 적절한 조치가 가능하다. 추운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거나 혹은 심하게 몸을 떨거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먼저 저체온증을 의심해야 한다.

저체온증 환자를 발견하면 우선 더 이상 중심체온을 잃지 않도록 마른 담요나 이불 등으로 감싸주는 것이 좋다. 담요로 덮어주면 시간당 0.5도에서 2도의 중심체온이 상승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가벼운 저체온증에 효과적이다.

전용준 원장은 “겨울철에는 신체 기능이 떨어져 추위 속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알코올 의존 환자의 경우 저체온증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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