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복
선임기자
월간강원 편집장

잔인한 4월이다.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바다는 말이 없다. 오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 있다는 뉴스를 보고 싶다.

대한민국 전체가 뻥 뚫린 가슴과 먹먹함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집으로 6.4지방선거 예비홍보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무슨 낯으로 이런 것들을 보낼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홍보물을 버릴 수도 없고 보내야 하는 예비후보들의 ‘알뜰함과 정성스런’ 마음도 이해는 됐다.

화려한 말로 둘러친 강원도와 지역을 위한 정책의 향연이 페이지, 페이지 마다 가득했다. 예비후보들이 보낸 이 홍보물대로라면 우리가 못살고 홀대받고 어려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모두 모아 청와대로 보내야만 할 것 같다. 꼭 이렇게 추진할 수 있도록 여야를 떠나 ‘대통령님’이 임기 내내 챙겨주시라고.

예비홍보물의 공통주제는 지역경제 살리기다.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몇 만개 만들고, 올림픽 준비를 통해 또 일자리를 챙기고, 경기를 부양하고, 대박 통일준비를 통해 강원도의 위상과 가치를 높이겠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정부가 대통령이 한 공약조차 예비타당성 조사 명분을 앞세워 힘들다는 동서고속철도. 이것을 임기 동안 한번 이뤄내 보겠다는 다짐을 넘어 조기 착공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움켜쥐고 앉은 강원랜드의 종합리조트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재원은 도민들의 혈세로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가 하면 폐특법을 개정해 아예 향토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후보도 보인다.

도지사가 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코미디’는 둘째치고라도 강원랜드의 다른 대주주와 일반주주들이 과연 이러한 계획을 어떻게 생각할까.

안 되면 말고 식, 내지는 빠져 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단 한 개, 그것도 구속력이 없는 투자양해각서(MOU) 정도 체결한 성적에 그치고 있는 동해안경제자유구역을 임기 동안 활성화시키겠다고 한다. 컨테이너 물류단지 하나 없고 항내 철도 인입선 개설문제조차 수십년 째 민원으로 남아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어업재단을 만들어 새로운 기술과 작목 시도 시 자금을 지원하고 실패할 때 지원금을 탕감해주겠다고 한다. 무슨 재원으로 얼마짜리 재단을 만들고 얼마나 지원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다.

친환경 농사로 전환하는 농민들과 농가들에게 생산 또는 소득 감소분에 대한 지원금이나 실패 시 지원금을 탕감해주는 제도, 정책자금 상환을 비롯한 각종 농어가부채를 획기적으로 탕감해주는 정책이 더 현실적임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황당한 정책도 눈에 띤다. 2018 동계올림픽의 철저한 준비 대책으로 특별법을 만들고 출국자들에게 1만원씩 부과해 3천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알펜시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도지사에게 언제부터 특별법 제정 권한이 부여됐는지, 또 현행 지방세법 상 도지사가 세목을 늘릴 수 있는 권한을 언제 위임받았는지 알고 싶다. 행정능력이 탁월한 후보에게는 대한민국의 법령체제를 넘어설 마법의 램프 같은 것이 있는가 보다.

발표한 정책들이 현실성이 있든 없든 그것은 유권자와 전문가들의 판단할 몫이므로 판단을 유보한다. 문제는 이 예비홍보물들의 마지막 장 맨 아래 부분이다.

여기에는 공직선거법 상 반드시 넣어야 할 문구, 즉 ‘이예비후보자홍보물은「공직선거법」제60조의3제1항제4호에따라 제작한 것입니다.’라며 인쇄사의 명칭․주소․전화번호를 넣도록 돼 있다. 여당 후보로 나선 2명의 예비후보가 ‘서울시’ 주소의 예비홍보물을, 경선홍보물은 3명 모두 서울이 인쇄처다.

정책연대 한번 해보라면 아역실색 할 후보들이 인쇄소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서울에 맞추는 기막힌 연대를 이루어 낸 것이다. ‘브라보’다. ‘큰 일 할 사람들에게 홍보물 정도 가지고 시비냐’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일조차 지역을 챙기지 못하는 그런 후보들이 과연 지역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큰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더구나 골목상권이 위협받고 특히 지역의 인쇄소와 디자인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설비와 인재육성 등 새로운 투자는 고사하고 생존권이 위태로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업계 상황과 올림픽 준비과정에 참여할 도내 인쇄소와 디자인회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는 점을 조금도 생각지 않은 행동이다.

머리는 서울과 중앙정치에 두고 말만 뻔지르르 한 전형적인 정치 말꾼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처럼 이들의 행태는 타 출마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도 염려스러운 일이다.

강릉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강릉시장 후보 역시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인쇄소에서 예비홍보물을 만들었다. 또 같은 지역 야당의 한 후보 역시 현수막을 서울업체에 제작해 왔다고 한다.

물론 할 말들은 많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과 핑계로도 지역을 대표해 주민들과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고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취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하다.

홍보물이나 현수막 등과 같은 포장이 선거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류기자가 보기에는 사고의 깊이와 지역에 대한 애정, 가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지역 중소자영업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보듬는 상생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이 일류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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