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여행작가 추천 국내 여행지 '양양 구룡령 옛길'…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기분 좋은 적당한 기온의 계절이다. 가을이 오면 대한민국 산하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멀리 갈 필요없다. 짧아서 더욱 아쉽고, 귀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남겨보자. 여행 마니아들이 추천해 준 양양 구룡령 옛길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편집자 주)

설악산과 오대산의 단풍이 고운 것은 알지만 막상 그곳을 찾아 인파에 파묻힐 생각을 하니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호젓하게 거닐면서도 물감을 칠한 듯 고운 단풍을 접할 수 있는 여행지가 없을까.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이어주는 구룡령 옛길을 추천한다. 명산들의 단풍에 결코 뒤지지 않을뿐더러 죽령옛길, 문경새재, 문경의 토끼비리와 더불어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길로 지정될 정도로 옛길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노송의 허리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는 호사에 감사하며 굽이 길을 걷다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구룡령 단풍길.

□ 한국판 차마고도, 구룡령 옛길

사람의 발걸음이 모여 길이 되었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수백 년 동안 민초들의 발자국이 모여 풀이 사라지고 굽이길이 이어졌다. 문경새재, 박달재, 운두령, 백봉령, 진고개, 한계령 등 고개마다 옛사람들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아홉마리 용이 백두대간을 휘감아 돌면서 약수로 목을 축였다는 구룡령 역시 그 뜻을 같이했고 백두대간에 가로막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관서지방과 관동지방은 고개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었다.

바닷가 양양 사람들은 소금, 간수, 고등어, 명태를 등에 지고 험준한 고개를 넘었고, 홍천 명계리 농민들은 산비탈에서 수확한 콩, 팥, 녹두, 수수, 감자 등을 거두어 구룡령 주막에서 물건을 바꾸었으니 ‘한국판 차마고도’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구룡령 등산로 입구 계곡.

양양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고개는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 구룡령(1089m)이었다. 오늘날 동서를 잇는 이 숨통 같은 길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설사 안다 해도 일제 강점기 때 자원수탈의 목적으로 신작로를 낸 56번 국도만 차로 넘었을 뿐 선조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담긴 옛길을 걸어본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발 대신 바퀴가 길의 주인이 되면서 도로의 폭은 넓어지고 교량과 터널이 놓이면서 옛길은 잊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길이 되었다.

총천연색으로 그려낸 호젓한 단풍길

노새를 탄 신랑이 산을 넘었고, 가마를 탄 신부는 고개를 넘으면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구절양장길이다. 옛 유생들은 술병을 옆구리에 차고 산을 올라 노송 아래서 시를 읊기도 하고, 아낙의 교태소리에 주막에 며칠씩 눌러 앉았다. 그러다가 지치면 다시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구룡령 옛길의 호젓한 단풍길을 걷고 있는 등산객.

이렇듯 옛길은 호젓함과 여유를 즐기는 데 있으니 시간에 쫓기며 서둘러 걷는다면 옛길의 재미는 반감될 것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는 호사에 감사하며 굽이 길을 걷다보면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흥에 겨워 어깨까지 들썩여진다. 단풍 행락철, 인근 설악산과 오대산이 행락객이 몰려 정신을 쏙 내놓는다면 구룡령옛길은 단풍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뿐더러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빨간 단풍잎, 갈색의 참나무 잎, 노란 다릅나무 잎이 한데 어우러져 총천연색 가을빛을 드러내고 있다.

□ 소나무 전시장인 솔반쟁이길.

구절양장 금강소나무길.
양양의 갈천산촌 체험학교부터 구룡령 옛길이 시작된다. 괴나리 봇짐장수들은 마을 주막에서 배를 채우고 갈천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섰을 것이다. 고개마루(1089m)까지 2.7km, 2시간이면 거뜬하다 개울을 건너면 본격적인 옛길에 접어든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일본강점기 때 만들어진 철광석 운송로에 들어서니 눈 여겨 봐야 한다.

대숲소리 들으며 지그재그 길을 걷다보면 고목이 쓰러져 길 가운데를 가로 막고 있다. 나무 아래로 오리걸음으로 넘어가는 재미도 그만이다. 어림잡아 200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가 도열해 있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하다.

두 나무가 서로 감싸 안은 사랑나무는 신기하기만 하다. 구룡령에서 가장 큰 금강소나무는 높이 25m, 허리둘레만 2.7m로 보기만 해도 그 위용에 압도당한다.

솔반쟁이까지는 소나무전시장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튼실한 소나무가 옛길과 함께 한다. 단풍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낙엽으로 다져진 부엽토길은 카펫 위를 거니는 것처럼 푹신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눌리고 세월의 상념까지 켜켜이 쌓인 길은 허리춤까지 패여 있어 마치 봅슬레이길을 연상케 한다.

굽어 있다기 보다는 접혀 있다는 표정이 딱 맞을 정도로 스프링같은 길이다. 기분 좋은 것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삭도승강장과 콘크리트 잔해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양양의 철광석을 수탈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 현장이다.

노송을 두 팔로 감싸안은 사랑나무.

묘반쟁이와 횟돌

묘반쟁이에는 양양의 마라톤맨이 잠들어 있다. 양양과 홍천의 수령은 각각 출발해 만나는 지점에 고을의 경계를 하자고 약속했다. 이 말을 들은 양양의 청년이 수령을 업고 빠르게 달려 구룡령을 넘어 홍천 내면 명계리까지 달려가 홍천의 수령을 만났다. 고개 너머 내면까지 양양땅이 되었으니 수령은 무척 흡족했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뛰었던 청년은 돌아오는 길에 지친나머지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청년의 공적을 기려 묘를 만든 것이 묘반쟁이다.

양양의 마라톤맨을 모신 묘반쟁이.

200m쯤 더 오르면 솔반쟁이가 나온다. 너른 평지에 나무의자가 놓여 있어 잠시 다리품을 쉬기에 딱 좋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에서 나온 말로 여정의 반을 의미한다. 이 길가에 괜찮은 소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90년대 후반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몰래 베어갔고 지금은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루터기를 어루만지며 잘려나간 소나무의 크기를 상상해본다.

7부 능선에 자리 잡은 횟돌반쟁이는 산소를 모실 때 땅을 다지는 횟돌을 볼 수 있는 곳. 관을 놓는 자리에 횟가루를 뿌리면 나무뿌리가 목관을 파고들지 않기 때문에 인근 마을에 사람이 상을 당하면 이곳까지 와서 횟돌을 캐갔다고 한다.

고개마루 주막터

정신없이 굽이길을 걷다보니 고개 마루에 닿게 된다. 한때 이곳에 주막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터만 있을 뿐 예전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양양과 홍천 사람들이 물건을 바꿨던 주막이 있던 구룡령 옛길 정상.

양양사람들은 오징어와 새우젓을 가져왔고, 홍천사람들은 고구마, 감자와 옥수수를 가져와 이곳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물건을 바꾸었다고 해서 '바꾸미길'이라고도 부른다. 때마침 흰구름이 구룡령을 넘나든다. 동해의 해룡이 흰구름에 얹혀 고개에 살짝 걸치고 있다.

구룡령은 다시 걸어야 할 내 마음의 길이다.

구룡령 옛길 등산로.


● 여행정보
가장 편한 구룡령 옛길 답사는 56번 국도가 지나는 구룡령 정상 백두대간방문자센터(해발 1013m)부터 정상을 시작해 갈천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센터에서 10분 쯤 경사길을 오르면 능선정상이 나온다. 거기부터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져 수월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고개마루까지 1.2km 20분이 소요된다. 이곳에서 갈천산촌 체험학교까지 천천히 하산하면 2시간이면 족하다. 차량이 2대가 간다면 한 대는 백두대간방문자센터에 주차하고 나머지 차량은 갈천산촌체험학교 앞에 세우면 보다 수월한 산행이 된다. 2대의 차량이 없다면 갈천산촌학교에 주차하고 고개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양양에서 갈천리행 버스가 하루 5회 있다.(8:10, 11:00, 13:30, 16:00, 18:00) 그 중 8:10에 출발하는 차는 갈천리를 지나 홍천으로 넘어가는 버스다. 차량을 가져왔다면 갈천리에 차를 주차해놓고, 첫 차를 이용해 구룡령 정상에 내려 구룡령 옛길을 걸어 내려오면 된다. 산행시 생수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며 낙엽이 미끄러우니 등산화를 신는 것이 안전하다. 서울로 돌아갈 때는 오색약수를 지나 한계령을 넘어 용대리를 거쳐 46번 국도를 이용한다면 남설악 단풍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길안내:
서울-서울춘천간고속도로-남홍천IC-구성포사거리-서석-56번 국도-창촌-구룡령

맛집:
양양군 서면 송천떡마을(033-673-7020)은 찹쌀을 시루에 얹고 장작불로 쪄 떡메로 쳐서 손으로 빚은 떡이어서 쫄깃하고 말랑말랑하다. 인절미, 계피떡, 바람떡, 송편 등을 구입할 수 있다. 갈천약수가든(033-673-8411)은 엄나무와 황기를 넣은 토종닭백숙, 닭도리탕을 먹을 수 있다. 오색단지내의 남설악식당(033-672-3159)은 비빔밥을 조침령 너머 기린면의 고향집(033-461-7391)은 직접 콩농사를 짓고 속초에서 간수를 떠와 두부를 빚는다.

숙박:
미천골자연휴양림(033-673-1806 www.huyang.go.kr)은 휴양림 내 삼층석탑, 부도, 이수 등 보물 4점을 가지고 있는 선림원지가 있으며 계곡과 폭포가 일품이다. 산림문화휴양관 9실과 숲속의 집 등이 계곡 옆 경치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삼봉자연휴양림(033-435-8536)의 등산로는 구룡령과 연결된 백두대간 등산로다. 대명솔비치리조트(033-670-3502 www.solbeach.co.kr)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최고급 리조트이며 펜션 흐르는 강물처럼(033-673-0941)은 어성천을 끼고 있다.

글/사진 이종원 여행작가

이종원 여행작가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여행동호회 ‘모놀과 정수’(cafe.daum.net/monol4 1만6천명) 대표. <대한민국 숨겨진 여행지100><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니56><한국의 숨어있는 아름다운 풍경> 등 개인서적과 20여 권의 공저가 있다.

2008년 터키문화원 사진공모전 대상 수상. 2012년 ‘한국관광의 별’ 단행본 부문 대상 수상.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원고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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