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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학교폭력, 유년 시절의 가슴앓인 기억"
편집국 gwnews@daum.net | 승인 2020.02.11 17:01
안 두 근
춘천소년원 교사

초등학교, 아니 정확하게는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별로 즐겁지 않은 미술시간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조별 과제가 주어졌다. 과제는 식탁크기만한 큰 스티로폼 위에 운동장 풍경을 꾸미는 공동 작업이었으며, 재료는 함께 하는 조원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조의 조장이었다. 살기 바빴던 80년대 초반, 부모님의 관심은 아이들보다 일터로 향해 있었고 그 치열했던 삶 속에서 재료 준비는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머리를 짜내어 3백 원씩 돈을 모으기로 결정했으나 한명의 친구가 이렇다 할 이유도 대지 않고 돈을 내지 않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37년 전 친구의 얼굴은 늘 어두웠고 옷차림도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점심시간 늘 혼자 밥을 먹었고 무언가 부끄러운 듯 반찬이 담긴 도시락 뚜껑을 열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친구의 집은 움푹 들어간 곳에 있어 매우 좁고 낡았으며, 햇볕도 잘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조장이라는 허울 좋은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세 좋게 돈을 받으러 갔고 그날 친구는 끝내 내 시선을 회피하며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았다.

결국 친구는 미술시간에 설 자리를 잃었다. 힘 있는 또 다른 친구에게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다 당했고 내 시선을 회피하던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왕따가 되었다. 누구에게는 마치 백년과도 같았을 80분간의 미술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러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공부에 별다른 소질이 없었던 나는 어쭙잖은 지방대라도 진학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어디 갔다 오냐’ 하는 나의 질문에 작은 손가방 하나를 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던 친구는 무척이나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그것이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대학 생활은 즐거웠다. 특별한 목표 없이 찌들려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은 스무 살 청년에게 자유를 안겨주었다. 자유로움에 취해 무분별한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교회 수련회 갔다가 그만’, ‘대학도 포기하고 취업 땜에 학원 다니고 그랬는데’ 그 말이 전부였다. 그때야 비로소 친구가 들고 있던 작은 손가방과 어색한 미소의 의미를 알았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겹게 몸부림쳤던 친구의 고단함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다.

아침 등교 길, 가슴에 난 멍 자국과 얼굴 상처를 보이면서 ‘선배한테 맞았어’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멋있었던 철부지 어린 시절을 뒤로 한 채 세월은 또 다시 흘러 이젠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어 오늘에 닿았다. 19살의 기억으로 멈춰버린 친구와 친구의 죽음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나에게 보여준 침묵은 어쩌면 배려와 이해를 바라는 간절함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목이 메인다. 만약 큰 강을 거슬러 11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두 손을 뻗어 친구를 살포시 감싸 안아 주고 싶다.

지난 설 고향을 찾아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조차 없는 친구의 집 앞에서 친구를 한참 동안이나 회상했다. ‘야’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환하게 웃음 지을 것 같은 친구, 지금 옆에 있었으면 나 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었을 친구를 목청껏 불러보며 너무나 비겁했던 유년시절의 가슴앓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길게 뻗은 해안가 방파제를 따라 계속 걸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는 거칠고 높았다. 바다에서 나고 바다를 보며 자란 나의 친구들은 파도를 닮았다. 내가 20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춘천소년원 100여명의 아이들도 파도를 닮았다.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춘천소년원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이번에는 검정고시에 꼭 합격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 하겠다’, ‘미용기능사 자격증 취득하면 제일 먼저 아버지 머리부터 손질해 드리겠다’. 어제보다 다른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아이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따뜻한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의 의지가 더욱 더 강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한 줄의 지식, 한 개의 자격증보다는 내가 끄집어 낸 가슴앓인 기억과 아픔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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