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성 금
강원동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2015년 초, 남편이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훈섬김이 모집 공고를 보고 ‘당신이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권유로 보훈섬김이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도 월남 파병(백마부대) 장병출신으로 국가유공자입니다. 지금은 고향인 평창에 돌아와 자그만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소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모시는 유공자 어르신들은 90세를 전후하신 연로하신 분들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대다수이고 거의 대부분 홀로 생활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처음 어르신 댁을 방문하였을 때 대부분 어르신들의 첫 모습은 참전 배지와 참전 모자를 착용하신 경직된 모습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나는 유공자다’라며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첫 만남부터 강한 인상을 주신 어르신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참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회상하며 참전 당시 상황을 설명하실 때 여느 때보다 훨씬 말씀에 힘이 차 보였습니다.

홀로 계셔 열악한 환경과 외로움이 컸기에 저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하며 좁은 마당 한 켠에 키운 고추며 호박을 불편한 다리로 서서 지팡이로 호박잎을 뒤적이며 따주시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드시던 음식인 부추메밀전이라도 해드리면 달게 드시며 보내는 환한 미소와 보훈지청에서 좋은 사람을 보내주었다고 누누이 감사의 말씀을 전할 때에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한 어르신이 외출을 하셨다가 댁을 찾지 못하여 방황한 일이었습니다. 경찰관이 댁으로 모셔온 뒤 보건소에 모시고 가 치매 검진을 의뢰한 결과 치매로 진단을 받고 올 봄에는 증세가 심해져 어르신을 모시고 보건소로, 주민센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경찰서로, 소방서로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장기요양등급 2등급 판정을 받았고 주민센터에서는 차상위 계층으로 등록을, 경찰서에서는 배회감지시스템을 지원해주고 소방서에서는 화재경보기 등을 수리해주었고 어르신은 특별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느낀 것은 우리 일이 단순히 어르신들을 돌보아 드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령국가유공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이 일이 제가 보훈섬김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했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보훈지청 직무교육과 더불어 이 일에 도움이 되고자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야간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지금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현장중심에서 한분 한분을 찾아뵙고 살피는 ‘따뜻한 보훈’ 정책에 조금이 나마 보탬이 될 있도록 틈틈이 공부하여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이 남은 여생을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실 수 있도록 현장에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열심히 보살펴 드릴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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